감동, 마음이 움직이는 것
일기 본문
#1
오늘 언니에게서 카톡이 왔다.
조카랑 같이 누워 있는 사진이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매일 잔다고 누우면 라희(조카이름)가
데굴데굴 굴러와 내 옆에서 자. ㅋㅋㅋ 참 좋아”
자랑하는거야 ㅋㅋㅋ
귀엽지 내 딸.
요즘 예뻐지기까지 했어.”
사진과 함께 온 이 카톡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진짜 요즘 볼살이 조금 빠지면서 조카가 이뻐진 거 같았다.
“응 볼살 빠지니까 이뿌네 ㅋㅋㅋ
아 근데 진짜 사랑스럽겠다.”
라고 답장을 보냈다.
답장을 보내다가 문득 우리도 어렸을 때 이랬겠지…
지금은 안 그러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그래서 자식이 다 크고나면 상실감을 많이 느끼시는거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언니도 너무 상실감을 느낄까봐
언젠가 언니의 아이도 크면 언니를 떠나 독립하게 될 거라는 걸 환기시켜 줄 목적으로
“근데 다 크면 헛방이여 ㅋㅋ” 라고 보냈다가
“감성파괴자!”라는 말을 들었다!
억울해! ㅋㅋㅋㅋ
물론 예전부터 이런식으로 초치는 걸 잘해서 언니가 곧잘 “초치는년”이라고 장난으로 얘기했었는데,
내가 초 치는 사람은 맞지만 감성파괴자는 아니라규 ㅎㅎ.
#2
오늘 영화 “재심”을 봤다. (스포있어욥)
예전에 영화 “제보자”(2014)을 보고 말로 다 하지 못할 그런 마음이 들어서 한참을 잠을 못 잤었는데 또 그럴까봐 조금 무서웠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무척이나 마음에 묵직한 무언가가 남는 영화였다.
보는 내내 웃고 울고 욕했다. ㅎㅎ
어제 봤던 영화 ”박쥐”에서 송광호가 김옥빈을 흡혈귀로 만드는 장면이 소름끼치게 인간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보고 나서
그 장면만 계속 떠올랐었는데 오늘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어제 봤던 그 장면이 또 다시 떠올랐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라고 더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왔었는데
어느순간부터 나도 별 다를것 없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계기는 잘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드라마나 영화, 만화, 책(아~주 가끔)을 봐도 주인공보다 (남들과는 다른 더 도덕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
그냥 보통 사람들 그러니까 현실과 자기가 원하는 이상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고 있더라.
이를 테면, 영화속에서 부당하게 살인 누명을 쓴 사람을 도와 주인공이 재심을 청구하려고 하는데 돈으로 그 일을 막으려는 사람이
“그 사람한테 뭐가 더 필요하겠니. 불확실한 재심이겠냐. 확실한 돈이겠냐”라고 얘기했을 때 그리고 의뢰인이 정말 돈이 필요해 보였을 때
나는 확실하게 재심을 선택할 수 있을까. 못 그럴 것 같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항소를 준비하는데 어차피 그래봤자 이득 될 게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차라리 그냥 인정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이득이 된다고 설득하는 상황에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을까.
내가 감옥에 오래 있으면 어머니는 혼자서 사셔야 하는데도?
나는 나의 결백을 주장할 수 없을 것 같다.
입안에 씁쓸한 맛이 감돈다. 흐귝.
이 영화를 보기전에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실제 사건의 주인공인 변호사가 나와서 얘기하는 걸 봤었다.
진짜 솔직하신 분 같았는데 정말로 처음에는 유명해지고 돈 벌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태도가 바뀌셨다고 했다.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고 하자 그 분이 나도 처음부터 유혹에 빠질 위치에 있었다면 우리가 지금 욕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행동했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김어준씨가 그 말은 인정하지만 반대의 상황은 다르다며 누구나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 당신처럼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이 참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우리는 모두 유혹앞에 약하디 약한 욕망의 노예겠지만 적어도 마음속에 불씨하나는 남겨두었으면 좋겠다.
물론 대부분의 일들을 그저 타협하고 살겠지만 그래도 어떤일이 내가 정한 마지노선을 넘었을 때
그 불씨가 내가 결단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 세 개를 꼽아보았다.
[1] 폭력으로 자백을 하게 만든 경찰을 다시 보고 그 때의 기억으로 인해 강하늘이 움츠러든 모습을 보였을 때
일단은 그 경찰한테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만약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다면 그 때도 그렇게 움츠러 들었을까 싶었다.
물론 트라우마가 남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른 태도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
사실 이건 짐작도 하기 힘들다. 일단 나라도 고문을 못 버텼을 거 같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든 건
예전에 “김종배의 시사통”이라는 팟캐스트에서 고문피해자분과의 인터뷰 내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고문피해자셨던분께서 고문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얘기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만약에 내가 정말 작은거, 예를 들면 빵을 훔쳤다고 했다면 그게 사실이 아니라도 인정했을 거라고. 근데
이건 말도 안되는 걸 인정하라고 하니까 도저히 이건 인정할수가 없었다고..”
그래서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물론 나라면 고문을 못 견뎌냈을거다. …음 …아니 상상조차 못하겠다. 너무 끔찍하다.
그저 그 때의 선택이 그 뒤로 내가 얼마나 후회하게 하느냐 다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후회하면 어쩌면 평생 짐을 짊어지고 살게 되는걸지도 모르겠다.
[2] 결국 재심이 막히자 자신을 고문해서 억울하게 죄를 만들어 낸 경찰을 죽이러 가는 장면은
“도가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자신과 자신의 동생을 성폭행해 결국 동생은 자살을 했는데 그 가해자인 사람들은 풀려 났을 때,
그 작은 아이가 결국 칼을 들었다.
마음이 참 아프다….
[3] 그 살인을 막으려고 주인공이 와서 “나는 너를 믿는다. 니가 범인이 아니라고 내가 세상에 알릴거다.” 라고 얘기해 주었을 때.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에서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억울한 얘기를 진심으로 귀기울여 들어주고 믿어 줄 사람이 필요한 걸지도. (역시 자세한 디테일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충 기억나는대로 말하자면 몇 년동안 억울해서 계속 재판을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자신이 그 분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준 것 만으로도 그 분이 굉장히 고마워하며 그 억울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는 것이었다.
그 대목에서도 그리고 이 장면에서도 사람이 사는 데 나를 믿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 또 한 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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