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마음이 움직이는 것
5월쯤 코펜하겐 갈때 쓴 글 본문
의식의 흐름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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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했던 데드라인을 계속 넘기면서 마음이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데드라인을 넘기는 게 점점 엄청난 좌절감으로 다가오는 건 아마도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실제의 내가 다름이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겠지.
처음 목표가 6개월안에 논문을 하나 쓰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러다 논문을 쓰는 단계가 되자 모든게 달라졌다.
논문을 쓰는 것 자체가 연구했던 시간보다 두 배가 들었다.
쓰다보니 이런 저런 궁금한 점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보였다.
논문쓰는 걸 끄는 게 안 좋구나라고 느낀 건 이해한 부분은 너무 트리비얼한 결과인 것 같고 모르겠는 부분에서는 이게 논문이 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을 느꼈을 때다.
아, 논문은 당연히 충분히 생각해야하지만 너무 끌어서도 안되는거구나 싶었다.
거기다 성과에 대한 보상지연 효과까지. ㅎㅎ
여튼 이렇게 첫 논문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내가 처음 계획했던 6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내가 정해둔 데드라인이 지나자마자 마음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이내 그냥 쉬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지배하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찾아왔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모든 게 좋았던 처음 시작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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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내가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몹시 지쳐있었다.
도착해서 바로 행정실을 찾았을 때 직원이 내게 이런말을 했었다.
“독일에는 서류작업이 엄청 많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그냥 천천히 한 달 동안 한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그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지금 당장 이걸 끝내야 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조금씩 한 달 안에 끝내면 된다니!
마음이 엄청 누그러졌다. 편안해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혼자서만 빠르게 가고있다..
마음과 몸의 속도차이가 내 몸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마음에 폭풍이 휘몰아치는 건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때문이다.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를 떠올렸다.
지금은 잊어버린 작고 소소하지만 너무나 소중한 즐거움이 있었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적어도 행복했었다. 즐거웠다.
그래, 너무 지치고 못하겠으면 더 이상 즐겁지 않다면 굳이 연구… 하지 않아도 좋다. 그렇게 마음 먹었다.
그 까짓게 뭐라고.
처음부터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려고 선택한 길이었다.
너무 버겁다면 그러면 그만둬도 괜찮다…
아니 사실 안 괜찮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두렵고 스스로 너무 쉽게 포기헸다고 후회할까봐도 무섭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생각할까봐 가장 두렵다.
내 성격상 내가 진짜 다른 거 하고 싶어서 그만 두는게 아니라면 당연히 진거라고 생각할거다.
그래도 지는 게 불행한거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니까.
그런의미에서 그만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ㅋㅋ.
그래도 2년 동안은 고용에 대한 불안이 없으니 이 동안은 후회없이 연구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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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다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내 삶의 정상화.
다시 처음 독일에 왔을때를 떠올렸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행복하기만 했던 시간.
그 때 나는 엄청 충격을 받아서 내가 왜 외로움을 안 타게 되었는지에 대해 분석해 보았었다.
왜냐면 나는 외로움을 엄청 타는 성격이기 때문에!
뭐 여러가지 이유를 만들 수 있었으나 그 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게 “능동성”이었다.
인생을 정해진대로 가는 게 아니라 내가 하나 하나 선택하고 개척해 가는 것.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거.
그게 나를 정말 행복하게 했었다.
모든 게 새로운 처음에는 계속 능동적일 수 있었으나 점점 모든 게 익숙해지면서 빠르게 예전의 상태로 돌아왔다.
점점 타성에 젖어 축 늘어져가는 나에게 다시 능동성을 부여해야겠다.
그래서 생각한 게 여행이었다.
나는 여행계획을 짜고 예약을 하고 새로운 곳에 찾아가는 그 과정을 굉장히 좋아한다.
뭐 역사적인 장소, 예쁜거 맛있는 거 다 좋지만 집순이인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아이러니한 이유는 요 능동적인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주에 한 번씩은 작은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하지만 게으름의 관성은 얼마나 대단하던가.
저번주부터 이번주말에는 코펜하겐에 놀러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아무것도 준비안하다가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그러면 한 말 지키려고라도 갈테니까.
결국 그게 먹혀서 어제 부랴부랴 코펜하겐 가는 기차표와 숙박을 예약했다.
전날 밤에 다음날 아침 기차를.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아무것도 준비안하고 내가 뭐하고 있었던거지.
한국다녀온 이후로 시차적응덕분에 보통 7시에 일어났다가 다시 자서 7시반쯤 일어났었는데 오늘은 다시 자려다가 뭐하는거지 하면서 일어나서 짐을 챙겼다.
맨날 늘어져 있던 내가 이게 내 몸인가 싶을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악 오늘가면 내일 밤에나 올텐데 방을 개판이고. 설거지도 해야하고 빨래도 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으로 그 바쁜 와중에 방을 치웠다.
주말에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ㅋㅋ.
그리고 기차를 탔다.
얼마전에 봤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사연을 보내시분이 “스님, 저는 몸이 너무 게으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를 드리려고 했는데 도무지 일어나지지가 않습니다.
의지가 너무 약한건지 몸이 너무 힘든건지 모르겠습니다. (이하생략).”(내 기억력으로는 정확한 문장은 기억하기 힘들고 대충 이런식으로 얘기했다.)
스님이 대답하시길, “몸이 문제가 아니다.” 당장 아침에 잠깐 일어났다가 다시 자고 싶은데 누가 총을 쏘러 달려오면 벌떡 일어나서 순식간에 앞마당으로 뛰어나갈거다.”.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면서 이 말이 어찌나 생각나던지ㅋㅋㅋ 우스워 죽는줄 알았다.
여튼 대충 청소를 해두고 짐을 싸서 기차를 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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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신없이 온 여행이었는데 뭐가 이리도 얘쁜지.
요즘 매주 주말마다 집에 늘어져서 침대와 하나되어 드라마만 보고 있었는데
여행 오니까 너무 설레고 좋다.
이걸 노렸었지 그래. ㅋㅋㅋㅋ 제대로군 ㅋㅋㅋ
평생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면 좋겠다.
삶이란 잠시 소풍을 온 것이라던 어떤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보통 사람은 평생 소풍 온 기분으로 살 수 없다. 라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숏텀 비헤비어와 롱텀 비헤이비어가 다르다는 건데…
그럼 사람의 기분이 유지되는 어떤 캐랙터리스틱한 타임 스케일이 있다는 건가 라는 생각이…
그럼 인간의 감정이나 의지가 통상적으로 삼일에 한 번씩 리셋되니까 캐랙터리스틱한 타임 스케일이 며칠 단위라면 인생 전체는 대충 30000일정도로 정말 스케일이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그럼 우리가 항상 여행가는 기분이기 위해서는 이 캐랙터리스틱 타임을 주기로 한 번씩 리프레쉬를…새로운 것들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 허허허…
뭐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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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주어진 환경에 대한 순응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노화는 진화적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되는지 궁금해졌다. (너무 큰 점프인가? ㅋㅋㅋ 하지만 이 생각전에 몸의 노화가 시작되어서도 성장을 한다는 건 어떤의미일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큰 점프는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노화라는 게 뭔지, 생식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생의 주기까지… ㅎㅎ)
또, 생식을 빨리 해서 개체의 수를 늘리는 것이 종보존을 위한 것이라면 왜 어떤 종은 생의 주기가 길고 어떤 종은 짧은걸까.
생물의 복잡도에 의존하는걸까?
물론 더 복잡한 생물은 그에 따른 이점이 있겠지만 (의사소통이나 지식?) 그 만큼 성체가 되어서 생식을 할 때까지 기간동안
죽을 위험이 클텐데… 그러면 그건 코스트로 작용할텐데….
종마다 생의 주기는 어떤식으로 정해지는 걸까….
아… 연구소에 가서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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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벡에서 코펜하겐 가는 기차가 바다를 건너기 위해 페리에 실린다!
완전 신기!
오랜만에 바다를 보니까 너무 좋으다.
다행히 날씨가 좋다 :-).
45분동안 바다를 건너는 데 면세품을 살 수 있다!
덴마크는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다.
배에서 환전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