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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uggler J. 2017. 3. 24. 08:04
#1. 포닥 6개월째, 영어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집에 가고 싶다는 큰 위기가 닥쳤다. 하지만 사실 영어가 문제가 아닌거겠지. 처음엔 그냥 살아남는 게 중요하니 별로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좀 살만해지니까 그냥 외지인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외롭기도 하고 쓸데없는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다. 사실은 영어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겠지. 집에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진짜 집에 가고 싶은게 아니라 지금을 벗어나고 싶은것일 뿐. 외국에서 6개월 있으면 귀가 뻥 뚫리고 입이 풀릴 줄 알았는데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다. 목표가 너무 높았던 거. 못하는 게 당연한 걸로 생각하고 다시 평정심을 되찾는 중.

#2. 생애 처음으로 해외학회 구두발표를 했다. 연구실 내부 미팅에서 두 번이나 발표 했었고 (그 때마다 2주 전부터 무지 연습했었다) 연구실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연구내용을 정리해서 설명도 해주고 토론도 했었는데도 어쩜 이렇게 준비가 힘들 던지. 연습을 해도해도 말이 생각안나고 떨려서 죽을것 같고. ㅠ. 결국 12분짜리 대본을 만들어서 머리가 하얗게 되더라도 자동반사로 말이 나올 만큼 연습했다. 진짜 할 수 있는 만큼 연습했고 그래서 발표가 끝나고 나서 정말 후회는 없었다. 다행히 발표도 잘 끝나서 사람들이 질문도 많이 해줬고 발표 잘 들었다는 말도 들었다. 보스가 발표 잘 끝났다는 얘기 들었다고 메일도 보내줬다. 여기 사람들이 너무 친절해서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었지만 진짜 후회는 없었다.

#3. 나는 권위에 약한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학회 첫 날 어쩌다 분과 사람들이랑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유명하신 분들이 많았다. 몰랐다가 물어보고 밥 먹다 체할뻔.... ㅎㅎ... 보스가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다음날 오전에 하는 내 발표를 들으러 오겠다고 하신 분들도 계셨다... 그르지마... ㅠㅠ 뭔가 두가지 마음이랄까... 저런 사람들이 내 발표에 관심을 가져주는 게 고맙고 신기하고 자랑하고 싶으면서도 숨이 턱 막히는... 역시 나는 권위에 위축되는 사람... 역시 밥은 혼밥이 짱이지.

#4. 독일물리학회는 정말 재미있었다. 일단 처음 놀란건 어마무지한 예산이 있는 것. 일주일 버스, 트램, 지하철 프리 티켓과 매일 저녁 포스터시간 마다 주는 빵과 맥주는 좀 놀라웠다. 그 많은 인원에게 단 하루지만 저녁 한 끼 뷔페도 제공했다. 어떤 날 저녁은 와인에 치즈 햄 등을 나눠줬는데 줄서기 싫어서 안 받았다. 여튼 이건 좀 물리외적인거고 물리적인 부분으로 들어가자면 내용도 아주 좋았다. 첫 날 첫번째로 들은 초청강연은  Udo S.... 교수님의 강연이었는데 요즘 진행되는 써모다이나믹스연구 진짜 일도 모르지만 그냥 관심은 많아서 들어갔다가 감동받았다. 뭐지 이 교수님. 내가 정말 진심으로 일도 모르지만 뭔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큰 그림을 줬어. 진심 대박! 참가한 3일동안의 강연중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다. 이 분은 백퍼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엄청 재밌고 유익한 발표들이 많았다. 간만에 정말 즐거웠다.

#5. 포스터 발표장에서 진짜 재밌는 발표 두 개를 발견했다. 아직 학생들이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연락처를 캐내서 메일을 보냈다. 나중에 혹시 출판하거나 아카이브에 올리면 알려달라고 했다. 연구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 중 한 명은 사실 자기가 요즘 연구에 지치고 이게 정말 괜찮은 일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는데 내가 이 연구를 너무 좋아해줘서 너무 힘이 된다고 얘기했다. 그 말 듣는데 왤케 공감되던지 ㅎㅎ. 여튼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건 역시 언제나 기쁘다. ㅎㅎ.

#6. 4박 5일동안 35시간 잠을 잤고 20시간 정도 세션을 들었고 기차에서 15시간가량을 보냈으며 5시간은 발표연습을 또 다른 5시간은 시내 투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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