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마음이 움직이는 것
[일기] 삶의 질 - 나답게 살 수 있는 것 - 결국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본문
삶의 질이라는 게 결국은 얼마나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느냐인것 같다.
오늘 밤 운동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 눈이 왔다.
왤케 센치하게 사람을 만드는거냐!
까만 밤하늘에서 하얀 눈싸라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데 너무 어두워서
전봇대 근처의 노오란 불빛으로만 눈을 볼 수 있었다.
문득. 이 모든게 어쩌면 유전자에 결정되어 있는건 아닐지.
문득. 어쩌면 이 모든게 지금 주어진 능력치와 타고난 조건에 의해 내가 누릴 수 있는
내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치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올림픽 매달리스트는 될 수 없으니까.
어쨌든 주어진 범위내에서 내 삶을 살아내겠지.
그렇다면 결국 주어진 모든 환경 (내 능력치를 포함하여) 에서 얼마나 나로 살아갈 수 있는가가
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세상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도.
#1. 얼마전 페북에 글을 올렸는데 내 성격상 기분이 몹시 상하고 무척이나 신경쓰이는 댓글이 달렸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 지 무진장 신경이 쓰이더라.
나를 잘 봐줬으면.
나를 좋아해줬으면.
근데 그래서 찌질하게 변명을 댓글로 달고 있는 나를 보며
이 글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나를 좋아해줬으면 하는 나를 보며
내가 찌질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도 잘난 사람도 괜찮은 사람도 아니구나
내 머릿속에 도덕적으로 완벽한 고고한 사람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괴로웠다.
그러다가 이 불편함이 모두다 나의 굳어져버린 사고 생활 습관 이구나 싶었다.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가는 사고 생활 습관은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애정결핍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이 되었든 벌써 사고하는 습관이 굳었으므로 그게 스님이 말하는 “업식”
이나 “까르마”가 된게지. 나는 이걸 “사고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매번 어떤 형태의 사고 하는 흐름이 굳어져 버린게지.
내 까르마대로 나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뒤, 어떻게 하면 이걸 없앨 수 있을 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영영 불가능해보엿다.
그래서 또다시 몹시 괴로워졌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의 안정을 위해 유튜브를 뒤져 스님의 말씀을 들었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래, 나는 아직 소심하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다. 이걸 그냥 평생 안고 살아가도 괜찮다.
그냥 이게 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고 편안해졌다.
내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충분히 사랑스럽다.
내 마음의 평안을 얻고 나니 다시 세상이 달라보이는 나는 한 낱 약하디 약한 보통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