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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마음

Struggler J. 2019. 2. 10. 08:20

나는 확실히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뽐뿌가 오는거 같다. 

전의가 불타오른다고나 할까. 

맨 처음 이런 느낌이 든건 유뷰브에서 한조바디를 보았을때였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멋있고 특히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사람들에대한 리스펙과 로망 같은것이 생기면서 나도 막 저런거 하고 싶은 뽐뿌같은게 올라왔다.

그래서 그 동영상을 본 다음에 매일 아침7시 5km씩 뛰는 걸 2주동안 했다. 영상에서 일단 2주만 한다고 생각하고 하라길래 ㅋㅋㅋㅋ. 

그 다음엔 역시나 그만두고 원래의 생활대로 돌아가고 유튜브 중독때문에 유튜브를 끓으면서 자연스럽게 잊어갔다. 

그러다 오늘 나 혼자산다에서 성훈이라는 사람이 철인3종경기에 참여한 걸 봤다. 

다른 거 보다 일단 훈련을 해나가는 거 스스로 도전하는 게 너무 멋있었고 나도 뭔가 저런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뽐뿌가 왔다. 

역시 나는 어쩔수없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구나-. 쳇.

나는 이런게 없는 사람이 참 부럽다. 

솔직히 나는 성취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 

물론 사람들 마다 다들 정도가 다를 뿐 똑같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나는 성취를 하지 못하면 불행해진다는 게 문제.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아.' 라는 생각을 사실 못하겠다.

괜찮지 않다. 그저 나이가 들면서 인생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한 후부터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성취할수는 없다는 걸 받아드려고 노력하고 매 순간만다 연습할 뿐. 

잘나지 않고 성공하지 못한 자신이 느껴질때마다 사실 아직은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성취를 하면 행복하냐고? 흐흐흐. 순간 행복하지. 

근데 모든 감정에 유효기간이 있듯이 성취를 통한 행복 또한 시간에 따라 디케이해서 사라진다.

성취라는 건 한 순간인 것에 비해 성취를 하지 못하는 건 성취를 할 때까지 지속되는 순간들의 연속이라 더 길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 성취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 이 시간은 조금은 고역이다.  

실패는 용납이 안되고 그래서 어떻게든 성취해보려 개고생을 하지만 성공해봤자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거군. 

헐. 뭐이래. ㅋㅋㅋㅋ 쓰고보니 인생 진짜 잘못 살고있는거 같잖아! ㅋㅋㅋㅋ

여튼 그래서 경쟁심 없고 인생의 스포트라이트 받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사실 제일 부럽다. 

내가 앞에서 말한 성취라는 건 사실 인생의 스포트라이트와도 관계가 있다.

타인의 인정. 시선. 그리고 그런 타인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평가하게 된다. 

내 가치를 내가 가진 능력이나 실적, 실력으로 판단하게 되니 행복할리가 없는거구나. 

그래서 '나 혼자 산다'를 보다가 창민이 경쟁심보다는 자기 혼자 소소하게 사는 성격인게 너무 부럽더라 (물론 모든 걸 가진 위너지만 ㅋㅋ). 

근데 진짜 제일 부러운 건 그러면서도 최선을 다해서 산다는 거다!

여기서 최선을 다한다는 건. 음 그러니까. 아무생각없이 몰입하는 상태에 해당한다. 강박에 의한 최선말고.

그럴때 가장 행복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렇다.

예를 들면, 내가 전에 발레를 배울 때 사람들이 나보고 되게 열심히 한다고 했다. 

근데 나는 열심히 해야지생각해서 열심히 한 건 아니다. 

그저 주어진 활동량을 묵묵히 생각없이 할 수 있는 만큼 내 한계에 부딪혀가며 한 거다.

거기엔 어떤 경쟁심도 원하는 것도 없었다. 

그냥 운동하러갔고 내가 할 수 있는데까지 한 것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실패해도 괜찮은 마음이 든다. 

내가 어떤 동작이 하고 싶어서 했던 것도 아니니 동작이 안되서 슬퍼할 이유도 없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때문에 한 게 아니니까 하고 나서 허무하지도 않았고 

그 순간에 집중한 즐거움만이 남았다. 

그래서 열심히 살고 싶으면서도 열심히 살기 싫다. 

그런 두가지 마음이 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을 별 생각없이 최선을 다해 몰입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강박적 생각이나 결과에 대한 압박으로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열심히 살고 싶으면서도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았던거구나!


내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내 실적이나 능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나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살고싶지 않다.

'나'라는 사람이 가진 타고난 감정선이나 성향을 바꿀수는 없겠지만 지금보다는 더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살아오던 관성이 있어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도 자신의 습성을 바꾸는 걸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게 생소하고 두려울 수 있겠지만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주어진 시스템에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태도에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내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꿈으로서 어느정도 나는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거 같다. 

그리고 그것의 중요한 키워드는 즐거움.

 

초등학생때 처음 학원에 갔을 때 나는 나머지 반 학생이었다. 

처음 학원을 갔으니 선행학습을 한 친구들을 따라가지 못해서 항상 남들보다 한 시간씩 더 남아 그 날 해야 하는 양을 끝내야 했다. 

그런데 그 때 나는 그런 내가 한심하다거나 부끄럽다거나 왜 이것밖엔 안되는걸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내 자존감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모르는 걸 배워가는 게 너무나 즐거웠다. 

그 때, 세상에서 처음 즐거움을 느꼈다. 배움의 즐거움.

그 때 나는 전교1등이 되고싶다거나 엄청 똑똑한 학생이 되고 싶다거나 하지 않았다. 

열심히 해야지 생각보다는 주어진 일들을 해나갔고 그리고 그 시간이 꽤 즐거웠다. 

그런데 지금 내가하고 있는 일이 그 때 하고 있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이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완전히 다르다. 

그건 내가 이 일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 연구수행능력, 연구주제를 잡는 능력, 스토리를 잡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 이 모든 능력이 어느 수준이상의 실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부족한 능력을 채워나가는 이 과정이 전.혀. 즐겁지 않다.

그러지 못하면 이 사회에서 도태할 거라는 두려움이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끔 만들었고 그래서 나는 나의 성장하는 과정을 즐기기 보다는 성장을 이루는데에 더 주목했다. 

성장했을 때, 행복했다. 

영어가 늘었을 때.

논문을 전보다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었을 때.

나 스스로 뭔가 연구주제를 잡았을 때. 

발표를 잘하게 되었을 때. 

모두 행복했다. 

하지만 그 성장과정을 즐기지 못했다. 

오히려 고역이였고 힘들었던만큼 도망가고 싶었다. 더 멀리. 

내가 왜 이렇게 까지 하면서 여기 있어야 하는거지 생각했다.

그래서 성장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지만 지속불가능한 행복이었다.

이루어야 하는 건 여전히 많았지만 성장과정이 고역이었던 만큼 더는 하고 싶지 않았으니. 


그래서 생각해본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단 주어진 영어 수업을 그냥 따라간다고 생각했더라면. 

영어를 못한다고 좌절하기보다는 나름대로 영어 수업을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논문을 잘 써야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내가 한 일 퀄리티가 어떻든 간에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식으로 쓰자고 생각했더라면.

논문 못 서서 좌절하기 보다는 나름 논문 쓰면서 재미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 스스로 (혼자서) 독립적인 연구주제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랜덤한 생각이라도 남들이랑 토론하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했다면.

생각이 발전해나가고 깨달아가는 그 과정이 즐거웠을 텐데. 


지금처럼 계속 살면 내 능력이 부족해서 떠나게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스스로 떠나갈 거 같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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